
2023-2024시즌부터 V리그에 도입된 아시아쿼터 제도는 처음부터 반신반의 속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존 외국인 선수 제도에 더해 아시아권 선수를 한 명 더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팀 전력은 올라가겠지만 국내 선수들의 성장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함께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왓티 퍼티위, 태국의 위파위 시통 등 아시아 각국의 선수들이 단순히 '추가 자원'이 아닌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리그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제도가 V리그에 가져온 변화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봅니다.
1. 기대를 뛰어넘은 퍼포먼스: 메가와 위파위가 증명한 것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쿼터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배구 강국도 아닌 나라 출신 선수들이 V리그에서 유의미한 활약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습니다. 특히 메가가 선발됐을 당시 인도네시아의 세계 배구 랭킹은 59위였습니다. 정관장이 그를 선택했을 때 현장에서도 의아한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메가는 그 모든 의구심을 코트 위에서 하나씩 지워나갔습니다. 185cm의 신장으로 아포짓 스파이커 포지션을 맡은 그는 첫 시즌인 2023-2024 시즌 정규리그 35경기에서 736점을 올리며 득점 7위, 공격 성공률 4위를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아시아쿼터 선수치고 잘한 것이 아니라, 전체 선수 기준으로도 상위권에 드는 성적이었습니다. 그리고 2024-2025 시즌에는 더 완성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규리그 득점 3위에 공격 성공률 1위, 오픈 공격 1위, 시간차 1위, 후위 공격 1위 등 리그 전체를 통틀어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무릎 부상을 안고 출전한 챔피언결정전에서도 5경기 동안 153득점을 뽑아내며 흥국생명과의 혈투를 5차전까지 끌고 갔습니다.
위파위도 다른 방식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174cm라는 비교적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태국 국가대표로 다져진 기본기와 공수 양면의 균형 잡힌 플레이로 현대건설의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2023-2024 시즌 292득점과 38.92%의 리시브 효율로 팀의 통합우승에 기여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31득점과 안정적인 수비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위파위의 강점은 폭발적인 공격보다는 팀 플레이에 녹아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시아쿼터 선수가 에이스 역할이 아닌 팀의 유기적인 부품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연봉 대비 활약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데 반해,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첫 시즌 10만 달러, 재계약 시 15만 달러 수준입니다. 그 금액으로 득점 상위권에 드는 선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구단 운영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발견이었습니다. 성적과 비용 효율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은 셈이었고, 그것이 이듬해 두 선수 모두 원소속 구단과 재계약에 성공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2. 코트 밖의 변화: 팬덤 확장과 리그의 아시아 네트워크
아시아쿼터 제도가 가져온 변화는 경기 성적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메가와 위파위가 V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동남아 전역에 퍼지면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팬층이 유입됐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V리그 경기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기 하이라이트와 선수 관련 콘텐츠가 활발하게 공유됐습니다. 한국 배구가 아시아 지역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작은 이정표였습니다.
메가의 첫 시즌이 끝난 이후 정관장 구단이 인도네시아 청소년체육부 초청을 받아 친선경기를 떠난 일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 선수의 존재가 두 나라 배구 기관을 잇는 외교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스포츠가 국가 간 교류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사례였고, 제도 도입 초기 KOVO가 기대했던 동남아 시장 진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첫 걸음이기도 했습니다.
메가를 향한 인도네시아 팬들의 관심은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경기장에는 인도네시아 국기를 들고 응원하는 팬들이 나타났고, 히잡을 쓰고 코트를 누비는 메가의 모습은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이 스포츠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시즌이 지나면서 그것은 완전히 익숙한 풍경이 됐고, 팬들은 메가의 플레이 자체에 열광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한 선수의 존재가 가져온 문화적 변화는 단순히 배구 이야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KOVO가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을 통해 기대했던 동남아 방송권 판매 확대 효과는 계획대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메가라는 강력한 성공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이 성적 우선주의에 따라 배구 강국 출신의 신장이 큰 선수들에게 눈을 돌리면서 동남아 선수들의 선발 비율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당장의 순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제도의 원래 취지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리그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제도 설계 단계에서 좀 더 치밀한 고민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아시아쿼터 제도의 과제와 앞으로의 방향
아시아쿼터 제도가 2시즌을 넘기면서 이제는 단순한 실험 단계를 벗어나 제도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점검할 시점이 됐습니다. 메가와 위파위가 만들어낸 성공 사례는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였지만, 그 뒤를 이은 드래프트 결과들은 제도가 처음 의도했던 방향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성적 경쟁이 치열한 구단들이 점점 배구 강국 출신의 검증된 선수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동남아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의 선수들이 기회를 얻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사실 제도 설계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만약 아시아쿼터의 목적이 순수하게 팀 전력 강화라면, 구단들이 가장 실력 좋은 선수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본래 취지가 아시아 배구 교류 활성화와 리그의 외연 확장이었다면, 구단들의 선택이 특정 배구 강국에만 집중되는 현상은 제도의 방향성을 재점검해야 할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KOVO가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제도 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연봉 구조 역시 앞으로 계속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연봉은 신규 12만 달러, 재계약 시 15만 달러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 금액은 일반 외국인 선수와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메가처럼 리그 전체 득점 상위권에 드는 선수가 훨씬 낮은 몸값을 받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뛰어난 선수들이 더 나은 조건의 리그로 이동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메가는 정관장의 재계약 의사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갔고, 태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리그를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봉과 처우를 좀 더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실력 있는 아시아 선수들을 더 오래 리그에 붙잡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시아쿼터 제도가 국내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외국인 선수 한 명에 아시아쿼터 선수 한 명이 추가되면서 사실상 팀 내 외부 영입 선수가 늘어난 셈인데, 이것이 젊은 국내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모니터링 대상입니다. 지금까지는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가 각각 다른 포지션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큰 충돌 없이 운영됐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즌을 거치면서 이 부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쿼터 제도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를 지나고 있습니다. 메가와 위파위가 만들어준 긍정적인 출발점을 발판 삼아, 이 제도가 단순히 팀 전력 보강 수단을 넘어 아시아 배구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운영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씨앗이 심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직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