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구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였지만, 그 인기가 일부 팬층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V리그 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는 들쭉날쭉했고, 젊은 세대에게 배구는 '보는 스포츠'보다는 '체육 시간에 하는 운동'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배구 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면서부터입니다. 특히 <노는 언니>를 비롯한 스포츠 예능에 김연경, 이재영, 이다영 등 스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배구는 단순한 스포츠 종목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예능 출연이 배구 인기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1. 선수를 '사람'으로 보게 만든 예능의 힘
배구를 좋아하기 이전에, 저는 배구 선수들을 그저 '잘하는 운동선수'로만 인식했습니다. 경기 중계를 보면서 훌륭한 플레이에 감탄하는 것과, 그 선수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갖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그 간극을 좁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노는 언니>에 출연한 배구 선수들은 경기장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김연경이 동료들과 장난치고, 솔직한 입담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람이 이렇게 유쾌하고 털털한 사람이었구나 싶은 감정, 그게 팬덤의 시작이 됩니다. 스포츠 팬덤은 실력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팬덤은 인간적인 매력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됩니다.
예능이 만들어낸 또 다른 효과는 '진입 장벽의 완화'입니다. 배구 규칙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예능에서 먼저 선수를 알게 되면, 그 선수가 뛰는 경기가 궁금해집니다. 규칙을 몰라도 일단 응원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노는 언니> 방영 이후 V리그 관련 검색량이 증가했다는 데이터가 있을 정도로, 예능을 통한 유입은 꽤 뚜렷한 현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배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내가 예능에서 본 그 언니가 뛰는 경기"를 찾아보는 흐름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이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선수를 스포츠 선수가 아닌 '예능인'으로만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고, 경기 실력보다 예능에서의 캐릭터로 평가받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방향에서 예능 출연은 선수들을 대중에게 '사람'으로 소개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이 배구 인기 확장의 첫 번째 발판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스포츠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관심이 생겨야 그 사람이 하는 종목에도 관심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2. SNS와 결합된 예능 효과, 그리고 새로운 팬층의 탄생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과거와 달라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SNS와의 결합입니다. 예전에는 TV를 통해 방송이 나가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이 나간 직후부터 클립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인상적인 장면들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배구 선수들의 예능 출연 역시 이 흐름을 탔습니다.
김연경의 카리스마 넘치는 발언이나, 선수들끼리의 티키타카 장면이 짧은 클립으로 편집되어 SNS에서 바이럴 되면서, 본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노출되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TV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능 클립의 SNS 확산은 기존 방송 시청률이 담지 못하는 잠재적 팬층까지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팬층의 특징은 '덕질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입니다. 아이돌 팬덤 문화를 경험한 세대들이 배구 선수들을 덕질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배구 팬덤의 모습 자체가 변화했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경기장을 찾고, 선수별 팬 계정을 운영하고, 생일 카페를 열고, 응원 현수막을 제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팬덤 활동은 다시 SNS에서 확산되며 또 다른 유입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새로운 팬층이 단순히 특정 선수만을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점차 배구 자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예능에서 봤던 선수가 좋아서 경기장에 갔다가, 경기의 긴장감과 재미에 매료되어 진성 배구팬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그런 경로로 배구 팬이 된 친구들을 여럿 봤습니다. 예능이 단순한 일회성 노출에 그치지 않고, 스포츠로의 진입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이것이 예능 출연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3. 예능 효과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배구가 넘어야 할 과제
예능 출연이 배구 인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이것이 영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능 효과는 기본적으로 특정 선수의 인기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연경이 은퇴를 선언하고 실질적으로 국내 무대를 떠나면서,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는 팬이라면 누구나 체감했을 것입니다. 스타 선수 한 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기 구조는 그 선수가 사라지는 순간 동반 하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스타가 계속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 세대를 이끌 선수들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능을 통한 스타 탄생이 반복되려면, 배구 리그 자체가 매력적인 콘텐츠로서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선수가 예능에서 유명해져서 경기장을 찾아왔더니 리그 운영이 엉망이거나, 관람 환경이 불편하거나, 중계 품질이 낮다면 새로운 팬들은 금방 떠나버립니다.
이 지점에서 한국 배구 리그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보입니다. 관중 유입 이후의 경험을 얼마나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경기장 접근성, 좌석 편의성, 응원 문화, 중계 서비스의 질 같은 요소들이 함께 개선되어야 합니다. 예능이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이 계속 머물게 만드는 것은 리그와 구단의 몫입니다.
또한 예능 효과가 진정한 의미에서 배구의 저변 확대로 이어지려면, 생활 스포츠로서의 배구 인프라도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보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관중에서 생활 배구 인구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예능이 심어준 씨앗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능 출연은 분명 배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바람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스포츠 자체의 매력이 꾸준히 증명되어야 합니다. 배구가 그럴 능력이 있는 종목이라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