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세터 세대교체: 국가대표 주전 세터를 향한 젊은 피들의 경쟁 구도

by zxcvms170 2026. 2. 27.

세터 세대교체: 국가대표 주전 세터를 향한 젊은 피들의 경쟁 구도
세터 세대교체: 국가대표 주전 세터를 향한 젊은 피들의 경쟁 구도

배구에서 세터는 팀의 심장이라고 불립니다. 공격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상대 블로킹의 허를 찌르는 판단력, 경기 흐름을 읽어 최적의 선택을 찾아내는 두뇌 플레이, 그리고 팀 전체의 리듬을 조율하는 리더십까지 요구되는 포지션입니다. 한국 여자배구 역사에서 세터 자리는 항상 불안한 미래를 안고 있었습니다. 강혜미 이후 10년 넘게 차세대 주전 세터를 찾지 못했던 공백은 국제무대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랜 숙제에 대한 답안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00년대생 세터들이 V리그 코트 위에서 기회를 잡기 시작했고, 국가대표 주전 자리를 향한 경쟁 구도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습니다.


1. 한국 여자배구 세터의 역사: 반복된 공백과 해결되지 않은 숙제

솔직히 한국 여자배구의 세터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테네 올림픽 이전까지는 걱정이 없었던 포지션이었지만, 강혜미 은퇴 이후 무려 10년 넘게 제대로 된 차세대 세터를 발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김사니, 이숙자, 이효희가 번갈아가며 국가대표 주전 자리를 메웠지만, 이들 세 선수가 동시에 노쇠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공백의 위기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 구조적인 문제는 단순히 재능 있는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원인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V리그의 성적 지상주의 문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각 구단은 당장의 순위가 달린 시즌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인 세터보다 경험 있는 베테랑에게 의존하는 방식을 선택해왔고, 그 결과 어린 세터들이 실전에서 성장할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배구에서 세터는 경험이 쌓일수록 더 좋아지는 포지션입니다. 리시브가 흐트러진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공격 루트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 상대 블로커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은 코트에서 수백 번 실전을 치러봐야 생기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경험을 쌓을 무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재능 있는 신인도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무대에서의 한계도 이 문제를 거울처럼 반영했습니다. 도쿄 올림픽 당시 한국 대표팀의 세터는 뛰어난 기술력과 헌신으로 팀을 이끌었지만, 이탈리아와 세르비아처럼 빠른 이동공격과 다양한 전술 배구를 구사하는 팀들을 상대로는 구성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김연경이라는 절대적인 공격 옵션이 있었기에 세터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이것이 오히려 다양한 전술 세팅 능력을 지닌 세터가 성장하는 토대를 약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포스트 김연경 시대에 세터 문제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024-25시즌을 전후해 각 구단에서 2000년대생 세터들이 주전으로 나서는 장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습니다. 현대건설의 김사랑, GS칼텍스의 김지원, 페퍼저축은행의 박사랑, 한국도로공사의 김다은까지, 각 팀에서 어린 세터들이 경기를 소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데뷔 초반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그 불안함을 이겨내는 과정 자체가 성장의 시작이었습니다.


2. 차세대 세터들의 각자도생: 김다은, 김사랑, 그리고 경쟁 구도

2024-25시즌 여자배구 영플레이어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한국도로공사의 김다은이 꼽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202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장신 세터 김다은은 데뷔 시즌부터 31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며 116세트를 소화했습니다. 이는 베테랑 세터인 정관장 염혜선의 119세트에 근접하는 수치로, 신인이 소화하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출장 기록입니다.

김다은의 가장 큰 강점은 신체 조건과 경기 운영 능력의 조합입니다. 장신 세터가 드문 한국 여자배구에서 높은 신장을 활용한 세팅 타이밍은 상대 블로커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요소입니다. 또한 빠른 공격 배분 결정과 안정적인 토스 성공률은 신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해설진들도 시즌 내내 김다은의 성장 속도에 놀라움을 표했고, 이 선수를 국가대표의 미래로 보는 시각이 배구계 전반에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건설의 김사랑은 다른 방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2022-23시즌 드래프트 2라운드로 입단한 그는 주전 세터 김다인이 결장한 경기에서 선발로 기용되며 서프라이즈 활약을 펼쳤습니다. 5경기 연속 선발 출전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팀의 전통적인 강점인 중앙 공격을 살리는 빠른 판단력이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선발 데뷔 경기에서 서브 득점까지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순간이었습니다. 스피드와 움직임에서 아직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토스의 안정감과 속공 타이밍만큼은 상위권 세터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GS칼텍스의 김지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1년생인 그는 팀에서 주전 세터 자리를 완전히 확보한 상태로 시즌을 운영했습니다. 2005년생 신인 세터 이윤신을 교체 자원으로 두는 구조 속에서 김지원이 보여준 게임 컨트롤 능력은 GS칼텍스의 상위권 유지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이 팀에서 세대교체가 가장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이유가 바로 세터 포지션의 구성에 있습니다. 주전과 백업이 세대 차이를 두고 구성된 구조는 미래 세터 자원을 지속적으로 키우겠다는 의도처럼 읽힙니다.

2025-26시즌에는 이 경쟁 구도에 새로운 이름들이 추가됐습니다. 이고은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흥국생명이 서채현을 주전으로 기용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관장의 최서현도 염혜선 부재 시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기회를 잡은 선수들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패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세터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 혼전 양상은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3. 국가대표 주전을 향한 과제: 개인 기량을 넘어 전술 이해가 필요한 이유

V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것과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 자리 잡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습니다. 이 간극의 핵심은 전술적 유연성입니다. 클럽 배구에서는 팀의 공격 패턴과 선수 특성을 충분히 파악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할 수 있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짧은 훈련 기간 안에 다양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상대국의 특성에 따라 전술을 바꿔가며 세팅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험 많은 세터와 신예 세터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현재 대표팀이 직면한 과제는 더 구체적입니다. 포스트 김연경 시대의 한국 대표팀은 특정 에이스 한 명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격 옵션을 고르게 활용하는 팀 배구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 변화의 성패는 세터가 얼마나 다양한 공격 루트를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레프트, 미들, 아포짓을 균형 있게 활용하면서도 상대 블로킹의 틈새를 노리는 빠른 판단력, 이것이 다음 주전 세터에게 요구되는 가장 핵심적인 능력입니다.

국내 리그 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세터가 성장하려면 실수를 허용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베테랑 세터로 교체하는 방식은 단기 성적에는 유리하지만, 젊은 세터가 압박감 속에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경험을 쌓는 데는 방해가 됩니다. 대표팀 차원에서도 세터 세대교체를 병행 추진하면서 신인 세터들이 국제무대를 경험하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단기 성적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 여자배구의 다음 10년은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세터가 성장하느냐에 상당 부분 달려 있습니다. 김다은, 김사랑, 김지원을 비롯한 2000년대생 세터들이 만들어가는 경쟁 구도는 리그 내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세터 공백 문제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아직 어느 한 명이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고 보기는 이릅니다. 그 미완성의 경쟁이 앞으로 수 시즌 동안 V리그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